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터 모델 (문단 편집) === 동부전선에서 === * 발터 모델은 소문난 사냥 마니아답게 제6보병사단 주둔지 인근에 검은 뇌조 서식지가 있음을 알게 되자, ‘언젠가 시간이 허락된다면 꼭 와보고 싶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 그래서 제6보병사단은 9군 사령관을 위해 사냥용 마차와, 길 안내를 맡은 현지 러시아인 학생 및 경호와 수행을 맡은 아렌스 중위를 준비했다. 별이 총총 떠오르는 고요한 밤을 가로질러 달리는 동안, 평소의 긴장이 완전히 풀린 모델은 자신의 어린 시절 겐틴에서의 추억과, 드레스덴에 있는 아내와 세 자녀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친근한 어조로 아렌스의 가족 안부를 물어보았다. 마침내 다다른 목적지엔 신비로운 안개가 자욱했다. 검은 뇌조 세 마리가 사냥꾼들의 눈에 띄었지만 사정거리 밖이었고, 모델은 사냥총을 들고 뇌조에게 접근하는 대신 잠든 만물이 깨어나는 새벽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그가 르제프 전역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총성과 포화가 사라진 고요한 밤이었다. 그렇게 두 명의 독일인과 한 명의 러시아인, 뇌조 세 마리가 함께 잊을 수 없는 새벽을 목도했다. 아침 햇살과 함께 안개가 걷히고 방아쇠 한 번 당기지 않은 사냥이 끝났다. 6보병사단 사령부에 돌아온 모델은 사단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 또 올 수 있기를 기원하며 시쵸프카로 복귀했다. 1년 반이 지나서 1943년 7월의 쿠르스크 전역. 아렌스 중위는 모델과 재회했는데 모델이 먼저 아렌스를 알아보았고, 상급대장은 그날 밤 중위와 나눴던 모든 대화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파일:Walter Model John 6.Div.jpg]] ||1942년, 제6보병사단 주둔지에서 작전참모 존 중령과 논의 중인 발터 모델 9군 사령관|| * 모델 장군은 제6보병사단의 소식지인 《임시방편》의 열렬한 애독자였다. 매주 발행되는 신문에는 주요 뉴스와 사단 내부 소식, 각종 유머와 푸짐한 경품이 걸린 애독자 퀴즈 등이 수록되었다. 기념비적인 《임시방편》 100호 발행일, 모델은 최신 윤전기와 수천 장의 고급 인쇄용지, 퀴즈 경품으로 제공될 수 있는 다양한 비품들을 6보병사단에 기부했다. 이러한 협찬이 발행인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 모델 상급대장은 시쵸프카의 사우나에 종종 방문하곤 했다. 모델이 사우나에서 쉬는 동안, 사우나의 관리를 맡은 의무병은 감히 사령관의 휴식을 방해하는 사람이 있을까 긴장하고 있었다. 마침 인근을 지나가던 세 명의 병사가 사우나 안에 이용객이 한 명 뿐인 것을 보고, 자신들도 사우나를 즐기기로 했다. 잠시 후, 상병의 경악스러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모델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뭘, 벌거벗으면 장군인지 모를 수도 있지." * 시쵸프카의 전선 극장엔 영화 상영 직전까지 장병들이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엄청난 인파 때문에 극장 출입구 문을 여닫는 것조차 뜻대로 못하던 헌병은 격노했다. "지금 제 정신들이냐, 좀 물러서!!" 그때 무질서한 관객들 속에서 뜻밖의 단합된 외침이 들려왔다. "안 돼, 모델이 ''''우리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다!''''고 했잖아!!" 대답과 함께 더 많은 장병들이 전차와 같은 기세로 몰려 들어갔다. 그로스만 장군은 매우 흡족한 어조로 자신의 저서 마지막 장,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그래, 명령은 (언제 어디서나) 명령이지!”[* Einige Streiflichter 《Rshew, Eckpfeiler der Ostfront》 Horst Großmann, 1962] * 수술 후에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 9군 사령관의 용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OKH는 귄터 블루멘트리트 병참감을 스몰렌스크 독일군 병원에 급파했다. 그리고 OKH 병참감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본 광경은- 불과 며칠 전에도 분명히 위태로운 상태였던 중환자가, 환자복 대신 예의 칼 같은 군복 차림으로, 병상에서 9군 사령부로 직접 명령할 수 있도록 모두를 다그치는 모습이었다. 이미 9군 사령관 대리가 임명되었는데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병원장,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를 위시한 병원의 모두가 활력이 너무도 넘치는 나머지 당장 박차고 나갈 기세의 중환자(상급대장)를 만류하면서도 떨고 있을 때 마침 OKH 소속 장성이 도착한 것이었다. 중환자의 넘쳐나는 에너지와 행동력 및 경이로운 회복력에도 불구하고 요양은 불가피했다. 블루멘트리트는 모델을 드레스덴의 자택으로 보내어 수년 만에 온 가족의 재회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중환자는 평화로운 긴 잠에 빠져들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드레스덴의 4군단 사령부도 물심양면으로 모델의 요양을 도왔다. 그렇게 지치지 않던 열정도 끝없던 걱정도 멈추었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Generalfeldmarschall Model Biographie》 Walter Göriltz] [[파일:Generaloberst Walter Model June 1942.jpg]] ||1942년 6월의 사진. 불과 5월 24일에 중부집단군 사령부와 OKH로 발송된 긴급 전문에는 치명상을 당한 9군 사령관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고, 이송이 불가능한 용태라는 다급한 내용이 적혀 있다. 확실히 본 문서의 다른 사진들과 비교하면 많이 수척한 모습이다.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야전 병원에서 응급수혈로 모델의 생명을 지켜낸 장본인은 젊은 군의관 후보생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